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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잊혀진, 그러나 잊지 않았던 이쾌대 회고전을 보고

노상학


군상Ⅳ, 1948추정, 캔버스에 유채, 177×216cm, 개인소장


해방 이후 분단이라는 시대상황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남북 모두에게 외면당하고 다락방의 빛 바랜 사진첩처럼 한 동안 잊혀졌던 비운의 천재화가 이쾌대(1913-1965)가 화려하게 귀환했다. 이 화백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월북문인들과 더불어 해금(解禁)된 화가다. 그는 경북 칠곡에서 태어나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하여 제국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귀국 후 강점기의 암울한 현실에서도 그는 한국적인 감성과 정서를 반영한 세련된 작품을 왕성하게 선보였다. 특히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전시회에서 인물화에 관심을 기울인 <빨간 저고리를 입은 여인>, <카드놀이 하는 부부>, <무희의 휴식(1937)>, <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1940년대)>등이 소개되어 회고전의 품격을 한층 더 높여주었다. 더구나 작가의 대표적 걸작인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 앞에서 오랜만에 두 눈이 호사를 누려 맑은 기운이 샘솟는 기분이었다. 댄디한 중절모를 쓰고 오른손엔 붓과 왼손엔 팔레트를 들었지만 우리 고유의 두루마기를 입고작품 속 화폭 앞에 서있는 이 화백의 형형한 눈빛과 호쾌한 모습은 당시의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현실을 극복하고 이겨내겠다는 작가의 강렬한 의지가 엿보여 두고두고 여운이 남는명작이 아닌가!



이 화백의 천재적인 역량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또 다른 작품은 해방 이후 제작한 ‘군상(群像)Ⅰ-Ⅳ’시리즈이다. 일제 강점기의 고통 속에도 결연히 투쟁하고 마침내 해방을 맞이하여 민족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징한 <군상Ⅰ>과 해방 후 민족간 갈등과 혼란한 역경 속에서도 밝은 미래를 화폭에 담은 <군상Ⅳ> 작품은 한 마디로 압권이며, 리얼리즘의 대가로 인정받는 산물(産物)이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발발한 6.25 전쟁은 이 화백에게 남북의 선택을 강요했고 민족미술에 대한 그의 원대한 꿈은 여기서 멈춰 미완으로 남고 말았다. 분단 조국의 이데올로기에 희생양이 되고 민족의 수난을 화폭

으로 극복하려는 의지는 좌절되었지만 이념을 초월하여 작품으로만 웅변했던 진정한 그는 휴머니스트였다.



짧은 20년의 화폭 인생사에서 명작을 불같이 토해낸 이 화백이 앞으로 닥칠 불행을 모르는 채 사랑하는 아내에게 보낸 러브레터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오 내 사랑! 한 떨기 장미꽃! 나는 그대뜰로 배회하는 벌 나비 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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